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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괜찮아지는 기술> 데런 브라운 - 내 삶을 치유하는 스토아 철학의 힘

by 엄마빠 2023. 5.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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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그렇게 가지고 싶은 것이 많을까요? 우린 왜 그렇게 다른 사람을 시기하고 질투할까요? 나는 왜 이렇게 우울하고 불안하고 화가 많을까요? 그것은 어쩌면 우리에게 '나만의 삶을 개척하는 능력'이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야기 - 세상을 바라보는 틀

자유의 시대에서 나만의 삶이 없다니 도대체 무슨 뜻일까요? 우리는 '나는 맨날 게으름을 피워', '그 애가 답장을 안 하네, 내가 싫은가 봐!' 하는 작은 이야기들부터 '행복해지려면 좋은 직장을 가져야 돼', '직업을 통해 자아를 실현하는 삶이 멋진 삶이야' 등 삶을 사는 방식에 대한 커다란 이야기들을 통해 세상을 살아갑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가 어떻게 행동하고 사고할지에 대한 틀이 되지만, 마치 물고기에게 물이 당연한 것처럼 쉽게 인지되지 않죠. 불과 몇 세기 전만 해도 사람들은 오히려 일을 하지 않는 귀족의 삶을 동경했던 것을 생각해 보면, 이렇게 틀이라는 것은 항상 변화할 여지가 있는 데도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주입받고 마치 유일한 옵션인 것 마냥 삶을 살아갑니다.

 

저자권(authorship) 결핍

 

세계적인 심리 마술사 데런 브라운(Derren Brown)은 이것을 저자권(authorship)의 결핍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즉 우리가 우리만의 이야기를 쓰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데런 브라운은 이 저자권을 내 것으로 만들 때 비로소 삶을 주체적으로 살고 행복해질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우리는 왜, 어떻게, 언제부터 이야기를 통해 살아가고 있으며, 저자권을 찾는 것이 왜 그렇게 중요할까요? 뇌는 사실 여러 부위로 나뉘어 협력하며 일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하나 생기는데요, 분리된 뇌와 파편화된 정보의 홍수 속에서 나를 나답게 만들어 주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DMN(디폴트 모드 네트워크, Default Mode Network)입니다. 이 네트워크는 과거와 미래에 대한 생각을 이어 우리의 자아정체성을 유지시켜 줍니다. 

 

그런데 왜 자아가 필요한 것일까요? 뇌는 내/외부의 세계를 설명해 주는 수억, 수조 개의 각기 다른 보고서를 매초마다 처리해야 하는데요, 그러니까 그 보고서들을 필터링하는 빠르고 효율적인 알고리즘이 없다면 뇌는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것입니다. DMN이 만들어내는 자아정체성, 즉 '이야기'가 바로 그 알고리즘인 것입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하는 영화조차 어느 정도 현실을 각색한 것처럼, 우리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뇌가 만들어낸 이야기 속에서 살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남이 대신 써주는 이야기

 

그래서 그 오랜 옛날부터 많은 학자들은 이 세상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설명하기 위한 이야기들을 많이 만들어왔습니다. 현실 저 너머 불변의 진리가 있다는 플라톤의 <이데아론>이나, 세상 만물이 4가지의 원소로 구성되어 있다는 아리스토텔레서의 <사원소설> 등이 있죠. 

 

그런데 어느 날 더 이상 그런 이야기들이 필요 없게 되었습니다. 기독교와 신이 이 세상의 모든 이야기를 대신 써 주기 시작했기 대문입니다. 신의 섭리에 따라 살면서 사람들은 더 이상 삶의 의미에 의문을 가지지 않아도 되었지만 더 이상 개인적이고 주체적인 삶은 존재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기독교의 상당 부분 뿌리가 되는 고대 그리스에는 심지어 현대적 의미의 '개인'이란 단어조차 없었습니다(개인과 가장 가까운 단어는 '물질(substance)'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르네상스와 계몽주의를 거치면서 '종교'가 아니라 '개인'과 인간의 '이성'에 대한 이야기가 점점 고개를 들면서 사람들은 스스로의 삶과 행복을 추구할 수 있었죠. 하지만 단 하나, 채워지지 않는 큰 구멍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이야기'였던 것입니다. 자아가 정해진 이야기에서 해방된 순간 삶의 의미를 잃고 연약한 자아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오늘날의 소비주의는 그 약점을 집요하게 파고들죠. 수십억 가지의 상품과 광고는 우리가 무엇을 하고, 어디에서 살고, 무엇을 입여야 괜찮은 사람이 될 수 있을지 대신 정해줍니다. 과거에는 종교가 해오던 일이죠.

 

광고가 우리에게 그토록 강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이유는 광고가 손쉬운 인스턴트 이야기를 제공해 주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다양한 인스턴트 이야기 속에서 자유롭게 선택하고 있다는 환상을 느끼지만 사실은 누군가 미리 정해놓은 이야기를 따라갈 뿐입니다. 하지만 인스턴트 음식이 그렇듯 치명적인 단점이 있습니다. 내가 쓴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더 좋은 이야기를 가지는 순간 내가 가진 이야기는 갑자기 한 물 간 것이 되어 버리죠. 

 

스토아 철학 - 관점 바꾸기

그렇다면 세상을 해석하는 방식, 즉 이야기를 바꿀 수 있다면 세상을 더 잘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이미 2천 년 전에 그리스 학자들이 그 방법을 정리해 놓았습니다. 바로 스토아 철학(Stoicism)입니다. 스토아 철학은 제논이라는 철학자가 창시한 철학입니다. 스토이시즘(Stoicism)은 영어로 금욕주의를 뜻하기 때문에 '욕심을 버리면 행복해요, 하쿠나마타타' 같은 철학으로 오해할 수도 있지만 그것과는 많이 다릅니다.  

 

세상을 해석하는 나의 이야기를 다시 써라

 

스토아 철학의 가장 큰 무기는 바로 'Re-framing' 즉, '관점 바꾸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행운이란 건 뭘까요? 행운은 실재하는 것일까요? 골프에서 홀인원이 나올 확률은 정말 낮지만, 골프공이 그 옆 특정 지점에 떨어질 확률도 역시 매우 낮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홀인원을 엄청난 행운으로 여기고 평생 기억합니다. 홀인원이 아닌 수많은 골프공들은 무수한 기억 속에서 차츰 잊혀 가겠죠. 

 

맞습니다. 행운이란 것도 결국 우리가 세상을 해석하는 하나의 이야기 안에서 탄생하는 것입니다. 행운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일은 우리가 가진 이야기에 따라 아무것도 아닌 일도, 좋은 일도, 나쁜 일도 될 수 있는 것이죠. 스토아학파였던 로마 황제 아우렐리우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네가 외적인 일로 고통받는다면 너에게 고통을 주는 것은 그 일 자체가 아니라 그 일에 대한 너의 판단이며 즉시 그 판단을 멈춰 고통을 없앨 힘은 네 안에 있다.

 

우리는 세상에 일어나는 이런저런 일에 저마다의 해석을 덧붙여 판단하고 실제보다 중요성이나 심각성을 과장하며 없던 걱정도 만들어 내곤 합니다. 똑같은 말도 어쩔 땐 화를 돋우는 말로 들리기도 하죠. 이때 달라진 것은 단지 나의 판단일 뿐입니다. 아우렐리우스는 그 판단을 멈춤으로써 도움을 주긴커녕 스스로를 갉아먹는 나쁜 감정들에게서 멀어질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죠. 

 

아우렐리우스는 다시 이렇게 말했습니다. 

 

 

첫 번째 인상에 아무것도 덧붙이지 말라. 누가 너에게 악담을 했다는 말을 들었다면 내가 들은 것은 '누가 악담을 했다'는 것이지 '내가 상처 입었다'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첫 번째 인상만 따르고 내 안에서 내놓는 이런저런 생각을 덧붙이지 말라. 그러면 더 이상 아무 일도 생기지 않을 것이다.

 

즉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선 판단을 멈추고,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만 집중하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통제할 수 있는 부분과 통제할 수 없는 부분은 어떤 것일까요? 꽤나 간단합니다. 통제할 수 있는 것은 '나의 행동과 생각'이고, 통제할 수 없는 것은 그 외의 모든 것입니다. 즉 스토아 철학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에 마음도 쓰지 말고 고통받지 말자'는 의미의 금욕주의였던 것입니다. 

 

자칫 정신승리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나를 마비시키는 나쁜 판단을 멈추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자'는 의미이지, '더러운 것을 대충 예쁜 포장지로 싸놓고 만족하자'는 의미가 아닙니다. 마치 축구선수가 경기를 뛰면서 '경기에서 꼭 승리해야지'하고 생각하기보다 '패스를 더 정확히 넣어야지, 슛을 더 강하게 차야지' 하고 경기 자체에 집중하는 것과 같죠.

 

승패 자체는 내가 결정하고 판단할 일은 아닙니다. 인생도 비슷할 것입니다. 인생은 필연적으로 수많은 경쟁으로 가득할 텐데 경쟁에서 이기고 질 때마다 나의 행복이 흔들리고 앞으로 나아갈 의지를 잃어버린다면, 그리고 그 불행은 사실 내가 스스로 쓴 신파소설 때문이라면 어떻게 될까요? 영원히 승리만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요점은 어떤 일을 굳이 비틀어 해석하고 꼬아서 그 안에 침전되어 나 자신을 망칠 것이 아니라, 인생의 순간순간을 나를 위한 이야기로 채워 넣을 저자권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괜찮아지는 기술

 

최근 우울증의 원인이 단지 뇌의 화학물질 불균형 때문이라는 <세로토닌 가설>은 오늘날 신빙성이 없는 것으로 판명되었습니다. 세로토닌계 우울증 치료제들도 힘을 잃고 있죠. 반면 우울증이나 강박, 중독 장애와 같은 병은 '우리 뇌에 뿌리내린 부정적 이야기가 카메라 필터처럼 매일 같이 현실을 왜곡하기 때문'이라는 설이 힘을 얻고 있습니다. 이런 발상을 기초로 DMN의 활동을 줄이는, 즉 가지고 있던 이야기를 해체하는 <인지적 재평가> 기법, <마음 챙김 명상>, 그리고 사이키델릭계열 약물치료 등이 활발히 연구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기원전 3세기 그리스의 스토아학파에서 이미 다뤄졌던 내용이라니 신기하지 않나요? 책 <모든 것이 괜찮아지는 기술>에는 세계적인 심리 마술사 데런 브라운이 쓴 스토아 철학이 우리의 삶을 어떻게 바꿔놓을 수 있는지에 대한 생각이 담겨있습니다. '5분 만에 실패하는 방법',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 '우리가 주변에 끝없이 휘둘리는 이유', '저자권을 남에게 빼앗겼을 때 벌어지는 일' 등을 담은 책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이야기를 하고 그 이야기대로 산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게 될 것입니다. 

 

데런 브라운은 이 모든 문제와 의문들에 대한 스토아학파의 대답을 들려줌으로써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절망적인 이야기를 해체하고 우리의 이야기로 빈 공간을 채우는 방법을 알려줍니다. 그리고 이 방법을 내 것으로 만들 때 '불행은 결코 우리의 행복을 감소시킬 수 없다'는 스토아 철학의 정수를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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