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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석유 매장량, 주가, 주가전망

by 엄마빠 2024. 6.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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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석유 탐사 역사는 마치 끝나지 않는 모험담 같습니다. 1959년 처음으로 시도된 이래로 수많은 실패와 좌절을 겪었지만, 여전히 그 꿈을 놓지 않고 있습니다. 이제, 그 역사와 함께 최근의 희망적인 움직임을 살펴보겠습니다.

 

한국 석유 시추
한국 석유 시추


초기 탐사와 실패의 역사

1959년, 국립지질조사소는 전남 해남 우황리 일대에서 최초로 석유 탐사를 시작했습니다. 당시의 탐사는 현대의 첨단 기술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그 시작 자체가 큰 의미를 가졌습니다. 이후 1964년부터 1977년까지 경북 포항에서도 석유탐사가 이어졌지만, 모두 실패로 끝났습니다. 이러한 실패는 많은 사람들에게 좌절을 안겨주었지만, 동시에 더 나은 미래를 향한 희망을 키우게 했습니다.


바다로 향한 희망: 대륙붕 탐사

육상에서의 연이은 실패 후, 한국은 바다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1979년 한국석유공사가 설립되면서 본격적인 대륙붕 탐사가 시작되었습니다. 1998년, 울산 남동쪽 58㎞ 해역에서 '동해-1 가스전'이 발견되었습니다. 당시 한국은 세계 95번째 산유국으로 이름을 올리며 큰 기대를 모았습니다. 하지만 2004년부터 2021년까지 4500만 배럴의 천연가스를 생산한 후 결국 폐쇄되었습니다. 이곳은 상업적 성공을 이루지 못했지만, 한국의 기술력과 끈기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였습니다.

 

한국석유공사

포항에서의 발견과 해프닝

1976년 1월, 박정희 전 대통령은 연두 기자회견에서 “포항에서 석유가 난다”고 발표하며 국민들에게 큰 기대를 안겼습니다. 그 당시 발견된 석유는 드럼통 한 개(200L) 정도로, 실제로는 원유가 아닌 정제된 석유로 밝혀졌습니다. 이 해프닝은 한편으로는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지만, 한국이 석유를 찾고자 하는 열망을 잘 보여주었습니다. 그때의 흥분과 기대는 아직도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습니다.

제7광구와 한·일 공동개발구역

제주도 남쪽 대륙붕 8만2000㎢에 설정된 '제7광구'는 한때 대중가요의 주제로 등장할 정도로 유명세를 탔습니다. 한국과 일본은 1974년 '대륙붕 협정'을 체결해 공동개발하기로 합의했지만, 이 협정은 2028년 만료될 예정입니다. 이후 일본이 영유권을 주장하며 단독 개발에 나설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어, 한국은 이에 대한 대비가 필요합니다.

최근의 탐사와 논란

최근 포항 영일만 인근에서 '동해 심해 가스전' 탐사와 관련하여 논란이 있었습니다. 한국석유공사는 탐사 분석을 미국의 심해탐사전문기업 액트지오(ACT-GEO)에 의뢰했는데, 일부에서는 이 결정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석유공사는 이에 대해 "우수한 업체 한 곳을 선정해 다양한 전문기관을 통해 결과를 검증받는 것이 업계의 관행"이라고 해명했습니다. 액트지오는 가이아나, 볼리비아, 브라질, 카자흐스탄 등에서 주요 프로젝트를 수행한 경험이 있는 업체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발표와 한국석유 주가 급등

윤석열 대통령 발표
윤석열 대통령 한국 석유 발표

 

최근 윤석열 대통령은 "포항 영일만 앞바다에서 막대한 양의 석유와 가스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발표했습니다. 이 발표 이후 한국석유 주가는 2거래일 연속 급등하며 큰 관심을 받았습니다. 대통령은 "최근 140억 배럴에 달하는 석유와 가스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결과가 나왔다"고 밝혔으며, 금년 말에 첫 번째 시추공 작업에 들어가 내년 상반기에는 어느 정도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미래를 향한 도전과 희망

한국의 산유국 꿈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기술의 발전과 함께 더 많은 가능성이 열리고 있습니다. 포항 영일만 앞바다에서의 성공적인 탐사가 이루어진다면, 이는 한국의 에너지 자립에 큰 기여를 할 것입니다. 이러한 도전과 노력은 한국이 자원 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한국의 석유 탐사 역사는 끝나지 않은 이야기입니다. 실패와 좌절 속에서도 끊임없이 도전하는 한국의 모습을 지켜보며, 앞으로의 성공을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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